불공정한 숫자들
🔖 집계가 이뤄진다고 해도 반드시 불평등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계가 되지 않으면 불평등은 확실히 눈에 덜 보일 것이고, 진보의 가능성도 확실히 낮아질 것이다. 제임스 볼드윈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해 보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직면하는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직면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집계하지 않는 이유가 결국 정치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특히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그 데이터의 수집 과정을 결정하는지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기술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정부가 특정한 불균형을 심화하거나 불균형에 대처하지 않으려 할 경우, 그 정부는 데이터가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노출할 정도로 어리석고 낙관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또한 투명성 요구가 반란 행위가 된다면, 국제기구 및 정부간기구들은 집계를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개발 통계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면, 즉 기존 체제의 ‘강제적인 전복’이 일어나야 한다면, 그 혁명은 기술적인 해결 방법이 아무리 철저하고 의도가 좋다고 해도, 기술적인 해결 방법의 형태로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데이터 혁명은 실제로 혁명이어야 한다. 기술적인 난제들을 점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 뒤에 숨어 있는 권력 구조들에 대한 근본적이고 매우 정치적인 도전이어야 한다.
🔖 우리는 이어 양극단의 비율, 측 최하위 40%의 소득 비율로 최상위 10%의 소득 비율을 나눈 값이 소득 집중을 측정하는 대체 지표로 사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Palma ratio). (...) 궁극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대략 중간 계층들이 국민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불평등은 양극단, 즉 소득의 나머지 반을 가져가는 계층들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간층에 과도하게 민감하고 양극단에는 과도하게 둔감한 불평등 측정 지표를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그 반대의 특징을 가지는 측정 지표를 선택해야 할까?
🔖 권력은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넘겨주지 않는다. 하지만 수백만 명이 정의를 요구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권력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